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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2년 이상 끌고간다-'볼커'의 실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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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시카는바쁘다 2022. 10. 2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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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중앙은행의 고강도 물가정책은 고금리

 

인플레이션 파이터 폴 볼커의 등장

 

1979년 8월 미국 경제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소비자물가는 8월 기준 11.8%였는데 이는 두차례에 걸친 오일쇼크의 데미지가 가장 컸는데 원자재 물가와 물류비용은 미친듯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폴 볼커라는 사람이 미연방준비위원회 의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물가상승률11.8%는 엄청난 물가지수이다. 작년에 1000원하던 볼펜이 오늘 1180원이되는데 이것만 생각하며 여기에 올해 물가상승률10%만 더해져도 내년 볼펜 한자루는 1298원이 된다.

 

매년 10%씩 내 자산이 가치를 잃어간다는것 이거 정말 미치는 거다.

 

볼커는 간단해 보이지만 극약과도 같은 처방을 실시한다.

 

금리인상은 강력하고 아름답게

 

80년 4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대비 14.5%에 달하게 되고 볼커의 전쟁은 시작되었다.

같은 기간 실효기준금리를 8.0%에서 17.6%로 무려 9.6%포인트나 올려버리자 물가가 잡히는 듯 했다. 그러자 볼커는 금리를 다시 9%대로 낮추었고 승리를 자신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인플레는 다시 12%를 웃돌기 시작했고 볼커는 이 싸움이 쉽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다시 금리를 올린다.

 

80년7월 9.03%이던 금리를 1981년 19.10%까지 끌어올린다. 미친듯한 극약처방에 기업들의 줄도산이 기정사실화 되자 레이건이 공공연히 지지도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내 보였으나 볼커는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을 선택한다.

 

 

이 당시에 미국의 시중은행에서 소비자들이 대출을 받으려면 우대금리를 적용해도 21.5%였다,

 

조금씩 기세가 꺽이고는 있었으나 여전히 소비자물가는 10%언저리에서 머물고 있었고 고금리정책은 1982년 4월까지 그대로 유지한다. 부실한 기업들은 파산하기 시작했다. 

 

1983년과 1984년애 와서는 소비자물가가 3.2~4.3% 사이로 안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볼커는 멈추지 않고 10~12%대의 고금리를 유지했다. 1985년 5월까지 기본 정책은 고금리였고 경기상황을 보면서 금리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다가도 물가가 꿈틀거리면 다시 급격하게 인상시키고 기준금리를 물가상승률보다 무조건 훨씬 높게 유지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그냥 금리로 때려박았다.

지금의 3.25%는 애들 장난이었다. 기본이 12~14%였었다.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업자들도 늘고 8시뉴스에는 연일 볼커를 비난했다. 레이건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민생정책이 실패한것 아니냐는 참모진의 우려와 대선을 위협하는 지지율 하락에 레이건도 버티기 힘들었다. 계속되는 신변위협에 볼커는 권총을 늘 소지하고 다녔다.

 

볼커는 혹독한 대가를 치뤘다. 실업률은 급등했다. 회사가 다 망했으니까 근로자들을 채용하는 곳이 없었다.

파산한 농부들이 트랙터를 끌고 와서 연준 본부 출입구를 가로막는 사태도 벌어지고 아무튼 난리도 아니었다.

 

하지만 볼커는 뚝심으로 버텨냈고 결국에는 물가를 잡는데 성공했다.

 

"인플레이션은 잔인하고, 그리고 가장 잔인한 세금이다. 다양하고 예상못할 방식으로 고정수입에 의존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파월은 어떻게 대처할것인가